관리 메뉴

IT 컴퓨터공학 자료실

팔정도(八正道) 자료 2 본문

명상

팔정도(八正道) 자료 2

윤맨1 2020. 6. 12. 12:15

팔정도(八正道)의 재조명

“팔정도를 순차적 수행 방식으로 판단해선 안돼”

 

최근 대승과 동아시아 불교 전공자들과 초기불교의 기본교리에 대한 정기적인 윤독회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초기불교 전공자는 필자뿐으로 세부 전공이 다르면 불교의 이해에 있어 이렇게도 차이가 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초기불교 전공이 아닌 경우 초기경전보다는 주로 불교 개론서를 통해 초기불교의 일반론을 이해한다. 필자가 동아시아 불교 전공이 아니기에 동아시아 불교전적보다는 2차자료를 통해 동아시아 불교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점을 빠알리 경전을 통해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팔정도의 원어는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ṭṭhaṅgiko magga)’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여덟 마디나 여덟 가지 또는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나무에 비유하면 팔정도(八正道)는 여덟 가지의 한 나무 또는 여덟 마디의 한 가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팔성도(八聖道)와 함께 팔지성도(八支聖道)라는 한역이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팔정도에 대해 독립적으로 설해진 경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4성제의 도성제(道聖諦 :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의 내용으로 나타난다. 4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苦)의 원인(集)을 멸(滅)하는 방법(道)’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를 멸하는 것으로 그것이 성취된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4성제에 포섭된다. 고라는 인간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수행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론적인 가르침으로서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 수행 속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팔정도는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초전법륜에서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중도(中道 : majjhima paṭipadā)를 깨달아(abhisambuddhā)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했음을 선언하고 또한 그들에게도 실천할 것을 권한다. 이 때 중도는 곧 팔정도임을 천명한다. 팔정도는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들에게 첫 설법으로 시작하였고 또한 부처님이 반열반에 임하실 때도 마지막 제자인 수밧다에 남긴 마지막 유훈 또한 팔정도에 관한 것이다. 즉 부처님 가르침의 시작과 끝은 팔정도이다. 이처럼 《반열반경》에서 외도출신인 수밧다에게 부처님은 마지막 설법으로 팔정도가 없는 곳에는 그 어떠한 진정한 출가수행자도 없다고 강조한다. 팔정도가 있는 곳이라야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하고 열반을 성취할 수행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80세에 이르기까지 51년 동안 다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자신만의 가르침은 바로 팔정도임을 천명한다.

 

1. Ariyo aṭṭhaṅgiko magga.

 

이른 시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빠알리는 우리말과 달리 영어와 같이 복수를 분명히 표시한다. 그런데 팔정도는 단수로 쓰였다. 그 이유는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팔정도는 그 자체로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실천법이라는 뜻의 일승도(一乘道 : ekāyana-magga)로 표현되기도 한다. 단수로 쓰인 중요한 이유는 뒤의 ‘팔정도의 수행순서’에서 더 설명된다. 달리 이야기하면 팔정도의 각각의 덕목이 모두 일승도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실례가 경전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팔정도의 한 덕목인 정념(正念)을 일승도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2. Ariyo.

Ariyo의 뜻은 ‘성(聖)스러운’인데 4성제와 함께 왜 ‘성스러운’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팔정도가 ‘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귀한 수행법’이라는 뜻과 함께 ‘성스러운 사람들이 가진 실천법’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 발심(發心)한 사람들은 성스러운 삶을, 고귀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임을 나타내준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사람들을 뜻한다.

불교공부에 있어 궁극 목적지와 그러한 궁극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팔정도를 완성한 입장에서는 분명 수행과 증득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팔정도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는 것이다. 즉 깨달음을 얻기 전이나 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측면이나 성스러운 삶의 방식이 바로 팔정도이다. 경지에 이른 붓다가 아직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 시설하는 가르침으로서 팔정도일 때는 실천의 방법론일 것이다. 이는 정견(正見)으로부터 정정(正定)까지 모두 정(正)의 역어인 Sammā는 ‘(올)바른’의 뜻과 함께 ‘완전한’, ‘완성된’ 또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과 같은 말이 사용된 것으로도 증명된다. 붓다를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라 할 때 ‘등’자와 같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완전한 인격을 위한 실천법임과 동시에 열반을 성취한 완전한 인격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3. Magga.

Magga는 도(道)라고 번역되었다. 초기경전에서 Magga는 바로 팔정도와 동치시킬 수 있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 도는 궁극적인 진리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불교에서 도는 실천 수행법을 말한다. 특히 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성제를 이루기 위한 도성제의 팔정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도에 있어 일부 경전에서 팔정도는 다시 출세간도(lokuttara-magga)와 세간도(lokiya-magga)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팔정도는 기본적으로 사성제 중 도성제의 내용이며 동시에 중도(中道)의 내용이다. 그런데 37보리분법의 하나로서의 팔정도가 나열될 때는 세간도와 출세간도 모두일 수 있지만 사성제의 경우는 오로지 출세간도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4. Sammā.

Sammā는 정(正)으로 옮겨졌다. 정견(正見)으로부터 정정(正定)까지 모두 정(正)을 의미하는 Sammā는 원래 ‘(올)바른’의 뜻과 함께 ‘완전한’, ‘완성된’ 또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과 같은 뜻이 있다. 부처님을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라 할 때 ‘등’자와 원어가 같다. 따라서 보통 정견은 ‘바른 견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완전한 견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바른 것은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고 일체에 이른 보편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머지 팔정도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완전한 인격을 위한 실천법임과 동시에 열반을 성취한 완전한 인격자들의 삶, 그 자체이다.

 

5. 팔정도의 내용

팔정도의 내용은 전번 호에 대략 살펴보았다. 초기 경전의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다만 몇 가지 점을 추가로 더해보면 다음과 같다. 두 번째의 정사유(正思惟)에 있어 흔히 ‘바른 생각’이나 아니면 그대로 ‘바른 사유’로 번역하지만, 원어에 따라 더 정확하게 현대적인 번역을 한다면 ‘바른 의도’로서, 적극적인 목적이나 계획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올바른 마음가짐’ 또는 ‘올바른 마음 챙김’ 또는 ‘완전한 의도’를 뜻한다. 네 번째인 정업(正業 : Sammā-kammanta)은 업(業)이라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신업(身業)에만 한정한다. 즉 몸으로 살생을 저지르고, 훔치고,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최근 들어, 이 덕목과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재가자의 불사음(不邪淫)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일반적으로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의 아내나 남편과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모, 형제, 자매, 혹은 친척의 보호를 받는 여자나 어떤 이와 내연관계에 있는 정부와의 성관계를 범위로 서술된다.

다음의 다섯 번째인 정명은 올바른 생계수단으로서 재가자의 경우, 사람을 매매하는 일이나 살상 무기를 판매하는 일이나 독약을 판매하는 일이나 도살업과 고기를 매매하는 일이나 술을 판매하는 일 등이 올바른 생계수단이 아님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내용도 있다. 마찬가지로, 출가스님에 있어 정명이 아닌 사명(邪命)으로 농토를 일구는 것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점술이나 천문 그리고 길흉을 말하는 것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요술이나 고리대금 그리고 세속 사람의 심부름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마지막으로 점치고 약을 만들어 치료하는 일로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정명은 현대 한국불교사회는 물론 외국의 불교사회에도 충돌하는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스리랑카의 경우 일부의 해안가 어부들이 이러한 불살생과 정명의 가르침을 지킬 수가 없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팔정도는 경전에 따라서 십정도(十正道)로 정지(正智 : sammāñāṇa)와 정해탈(正解脫 : sammāvimutti)이 추가된다. 즉 팔정도를 통해 해탈을 성취한 성인에 추가되는 덕목이다. 마찬가지로 이 두 덕목은 삼학 가운데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와 함께 혜학(慧學)에 해당한다.

 

6. 팔정도의 수행순서

팔정도의 수행순서에 있어 몇몇 경전에서는 정견부터 순서대로 이루어져 정정에 이르는 것처럼 설명되어 있다. 경전에 따라서는 마지막인 정정(正定)에 앞의 일곱 가지가 모두 포섭되어 있다고 한다. 즉 정정이 되기 위해서는 나머지 일곱 가지가 수반되어있어야 함을 설한다. 때문에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이같 은 순서로 팔정도를 기술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초기불교 연구자들은 팔정도를 순차적 또는 점진적인 수행방식으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지양되어야한다고 한다. 즉 정견으로부터 시작하는 직선적이고 일방적인 인과관계로 정정으로 귀결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팔정도라는 말이 의미하듯 여덟 갈래 또는 여덟 줄기의 수행도이기에 각각의 덕목은 동시에 계발되어져야하는 성격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초기불교는 계(戒)를 갖추지 못하면 정(定)을 갖추지 못하고, 정을 갖추지 못하면 혜(慧)를 갖출 수 없는 성격임을 역설한다. 마찬가지로 팔정도를 삼학으로 재배치하는 설명은 이미 초기경전에 등장한다. 이같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차제(次第)에 따르면 계학(戒學)인 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이 먼저 선행되어야한다. 계학 즉 도덕의 확립을 조건으로 정학(定學)이 가능한 것으로 초기불교는 강조한다. 때문에 계학은 다음 단계인 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으로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정학에 바탕한 혜학(慧學)인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가 발현된다.

경전에서 팔정도의 수행은 여덟 가지 덕목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함께 병행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삿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정정진이고, 마찬가지로 삿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을 성취하기 위한 정념이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또한 정견 수행은 다른 일곱 가지 덕목을 일으킨다고도 나타난다. 흔히 차제(次第) 수행법은 사선(四禪)처럼 제일(第一) 제이(第二)와 같은 순서와 단계를 나타내는 말이 쓰이는데 반해, 팔정도는 그러한 용례를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덟 가지 수행 덕목의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단수로 쓰인 것을 통해서도 팔정도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각각의 팔정도가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수행해야할 법이라기보다는 동시에 병행해서 닦는 것이다.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이 팔정도 가운데 하나를 중점적으로 닦더라도 각각이 다른 일곱 가지와 관련 속에서 또는 포섭시키면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7. 팔정도 수행의 결과

팔정도 수행은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과 일체의 고를 여의고, 궁극적으로 열반을 성취하고, 해탈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는 법이다.

-조준호/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

 

출처 :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478